첫 주짓수 도복
- When : 2019 ~ 2021
- Why : 찢어짐
- How : 안녕~
첫 주짓수 도복이다.
유도랑 비슷하겠거니 생각하며 거금을 들여 도복을 사고, 수강료를 결제했다.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든 생각은 '환불할까, 환불해주려나...'였다.
세상에, 너무 많이 닿는걸.
다른 사람과 일정 거리가 유지되어야 하는,
다른 사람과 닿을 것 같으면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나에게
주짓수는 감당하기 힘든 운동으로 보였다.
'도복 값이 아까워서라도 한 달만 다녀보자'하며 수련한 지 4년째이다.
나는 물욕이 없는 편이다.
아니, 구체적으로는 옷에 욕심이 없다.
옷장을 열면 절반 이상이 얻은 옷들이다.
다시 말해, 옷에 돈을 지출하지 않는 편이다.
한달 수강료보다 도복 값이 아까웠던 덕분에 체육관을 한달동안 다녔다.
퇴근을 하면 운동을 하러 갔고,
종소리를 들으면 먹이를 떠올리며 침을 흘리던 파블로프의 개처럼
주짓수를 생각하면 퇴근을 떠올리는 직장인이 되었다.
운동을 하다보면 회사가 잊혀졌다.
낮에는 회사에서 정신적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나면,
저녁에는 운동을 하며 정신적 에너지를 충전하고 육체적 에너지를 소모했다.
땀을 흘린 후 사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면 스르르 잠이 들었다.
한달이 지나 수강료를 추가로 지불하고,
이사를 할 땐 근처에 주짓수 체육관이 있는지부터 확인하며,
꾸준히 하다보니 계단식 성장도 경험했다.
마치, 묵묵히 걷다 뒤를 돌아보니 산 중턱에 도착해서 눈 아래 풍경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억지로 와야해서 모이는 사람들이 아닌,
좋아해서, 스스로의 의지로 모인 사람들의 에너지도 느낄 수 있었다.
'나'에 대해 분석하고, 상대를 파악하며, 타이밍을 노리는,
세상을 보는 다른 시각도 생겼다.
스파링하다가 바지가 찢어졌다.
'3년 정도 입었으면 오래 입었지'하면서 새 도복을 구입했다.
여벌로 입으려고 꿰매어 입었다가, 실밥이 다시 터졌다.
그제서야 버린 나의 첫 주짓수 도복 바지.